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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 선조 행장(上系 先祖 行狀)] 상계 선조 행장(上系 先祖 行狀)
작성자관리자(poeun@poeun.com)작성일2022-09-23조회수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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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 선조 행장(上系 先祖 行狀)

 

1代 습명(襲明):형양공은 영일정씨의 시조이다. 휘(諱)는 습명(襲明)이고 호(號)는 동하(東河)이며 형양에 봉하였다. 출생에 대해서는 전하여지지 않고 있으나 그 행적을 미루어 고찰해보면 고려 숙종조(肅宗朝) 초기로 여겨 진다. 공(公)은 성품이 청렴강직하고 지·인·용(智·仁·勇)을 겸비한 거유(巨儒)로서 예종(睿宗)·인종(仁宗)·의종(毅宗) 3대왕조의 중신(重臣)으로 문명과 공덕을  높이 떨친 명신이었다. 영일 오천서원에 향사(享祀)되어 있다.

일찍이 학문에 능숙하여 예종조(睿宗朝)때 향공 문과(鄕貢 文科)에 급제하였다. 1116년〔고려 예종(睿宗)11년〕에 약관의 나이로 서경도사(西京都事)를 역임하고 내직으로 소명되어 내시(內侍)가 되었다. 1135년〔고려 인종(仁宗)13년〕에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키니 내시지후(內侍祗侯)가 되어 부사(副使) 허순(許純), 서령(暑令), 왕식(王軾)등과 함께 황해도에 나가서  순화현 남강에서 적의 진로를 봉쇄하였다. 1136년(고려 인종 14년)에 묘청의 난이 평정된 후 국자감사업(國子監司業)과 기거주(起居注), 지제고(知制誥) 등을 겸임하였다.

1145년(고려 인종 23년)에는 김부식, 김충효와 함께 50권의『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1146년(고려 인종 24년)에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옮기고 태자사부(太子師傅)가 되어『서경(書經)』의「대우모편(大禹謨篇」을 강론하였다. 仁宗은 항상 직간(直諫)하는 형양공의 충성심에 감격하고 넓은 도량을 중히 여겨서 승선(承宣)에 발탁하고 겸하여 동궁(東宮:황태자)의 태자의 스승으로서 부족한 태자의 장래를 영원히 보호해 주도록 당부하였으며 또한 仁宗은 임종시에 형양공을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에 제수 하였다. 1149년〔고려 의종(毅宗) 3년〕4월에 공에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제수하였다. 당시 조야에 공을 시기하여 임금에게 무고를 일삼는 무리들이 있어 의종은 공을 의심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폐신(嬖臣:임금에게 아부해서 신임을 받는 신하) 김존중(金存中)등의 참소가 이어져 영일현(迎日縣) 오천(烏川)으로 정향유배(定鄕流配)되었다. 적소(謫所)에 이르러 공은 임금의 뜻을 헤아려 알고 약을 마시고 일생을 마쳤다.

특히 시문에 특출하여 석중화(石竹花, 매랭이꽃)등이 유명하며 묘단은 포항시 오천읍 대송면 남성리에 있으며 종당(宗堂)에는 남성제단 현판이 있고 매년 4월첫째 일요일에 제례향사가 있다.

 

2代 섭균(燮均):위위 주부동정.  

3代 겸목(謙牧):내시 주부동정.

4代 인신(麟信):태학박사, 봉위동정.     

     차연(次延):사재 주부.

5代 지태(之泰):전서, 주부동정. 배위는 기계군부인 기계윤씨.

       사보(師保): 주부 동정.

6代 종흥(宗興):진현관 제학, 중현대부 감문위 대호군.  배위는 진씨.    

     화룡(化龍):직장

7代 임(林): 봉익대부, 판도판서. 배위는 의창박씨.    

     호(浩): 보승낭장.

      기(琦): 군기감

8代 인수(仁壽):검교 군기감, 증 봉익대부 개성윤 상호군. 

     인언(仁彦):1315년 출생,봉익대부 전공판서. 배위는 오천군부인 영일정씨

     준(俊):진전직.

     숙첨(淑瞻):보승중랑장.

9代 유(裕):직장동정, 증 봉익대부 밀직부사 상호군.  배위는 곡산연씨.

     광후(光厚):가선대부 공조판서. 묘소는 영천에서 동쪽으로 20리 원당리 묘좌(卯坐). 배위는 익양군부인 영천이씨.  

     원후(元厚):한성윤 

     신필(臣弼):영동정.  

     곡(谷):사온서 직장.

10代 운관(云瓘):공의 휘(諱)는 운관(云瓘)으로 시조 형양선생의 10대이며, 포은선생의 선고이시다. 시례(詩禮)의 가문에서 태어나 학문에 힘써 향공(鄕貢)에 과거(科擧) 성균관의 응복재생(膺服齋生)이 되더니 뒷날에 장자 포은선생의 귀(貴)로 신덕수의(愼德守義) 성근익공신(誠勤翊功臣)에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판병조사상호군(判兵曹事上護軍) 영경영전사(領景靈殿事) 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에 증(贈)하였으며 배위(配位) 永川李씨는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으로 봉해졌으며, 운관공(云瓘公)은 1355년(고려 공민왕 4년) 正月에 돌아 가셨고 배위인 李씨는 1365년에  돌아가셨다.

公의 세대가 이미 650년이 지나 산천이 여러번 변하여 문헌이 산일(散逸)되어 그 행적을 알 수 없음이 안타깝다. 송경지(松京誌)에 보면 그 부인 李씨가 포은선생의 어릴적에 '계세훈' (戒世訓)을 지은「백로가」야 말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그 비중이 버금가니 가히 부인의 인품을 알 수 있다.

公의 분묘(墳墓)는 임란병화(壬亂兵火)로 허물어졌다가 중세(中世)에 본군 군수(郡守) 한덕(韓德)이 각석표음(刻石表陰)하고 후에 현감 운한(雲翰)과 병사 익(兵使 榏)이 개갈(改碣)하고 근세에 이르러 다시 대갈(大碣)을 갖추었다.

묘위치는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서원골) 산31-1번지이며 2006년 묘역을 재정비하였다. 묘제는 음력 2월 8일 中丁일에 봉향하고 재실은 계현재(啓賢齋)라 한다.

영(瑛):아산현감. 배위는 이씨.

희숙(羲叔):사온서감. 묘소는 영천 서쪽 우천 신좌(辛坐).  

교(喬):보승중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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