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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답변
작성자玄逸()작성일2012-10-02조회수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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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고택 헌성비문에 있는 내용을 옮깁니다. ### 연정고택은 연정공(諱 一鋑,1739-1800)께서 창건하여 거처하시던 건물로서 국가지정중요민속자료 제107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250여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주위환경의 변화와 노후로 인한 부속건물의 멸실이 있었으나 원형만은 옛 그대로 보존해올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께서 기와 한 장 흙 한 줌도 마치 나의 살갗처럼 소중히 여겨왔을 뿐 아니라 남다른 숭조정신으로 조상의 혼령이 항상 척강하신다는 간절한 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운이 불길하여 한국전쟁중에 주손이 납북되고 가족이 흩어지는 변고로 대리인이 관리해오던 중 관리소홀로 본 건물이 위치한 대지 1,300여평의 소유권이 타인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급기야 고택보존회를 구성하여 대지소유권을 되찾기 위한 모금을 실시하였던 바 불일내 거금 7,000여 만 원의 헌성금이 모아짐으로써 무난히 문중소유로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같은 사실이 어찌 자랑이 되랴마는 우리 모두가 두고두고 경계하고 거울 삼아 조상의 유산을 대대손손 보전해 나가자는 일념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전말과 함께 헌성자의 이름을 이 돌에 새겨 전하고자 한다. 2007년 4월 일 연정고택위원회 세움 위원장 8대손 熙文 부위원장 8대손 容驥 총무 8대손 熙庚 유사 7대손 程植 ### 휘자가 비문에는 一鋑(새길 전)으로 적혀 있으나 오타인지 여러 문헌에 一陵 또는 一綾으로 보입니다. 족보를 찾아보면 정확한 사항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정공의 생몰연대로 보아 문화재 설명의 영조 원년에 건축했다는 내용은 틀린 것 같고 영조32년이라는 다른 설명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홍광표, 한국의 전통조경, p.112]에 따르면 정일릉의 자는 明如이고 호는 연정이며 통덕랑을 지냈다고 합니다. 선원사랑이라는 네이버 카페(종친카페인 듯함)에 올라와 있는 계보를 요약하여 옮겨드리니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해당 카페에는 양해를 구합니다. 남아 있는 시문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따로 발간한 문집은 없는 것 같습니다. 1대 정습명(시조) ... 11대 문예(2파 생원공파 파조) 12대 종소 13대 이휘 14대 차근 15대 윤량 16대 세아(호수공) 17대 의번 18대 호례 19대 시심 20대 석달 21대 중보 22대 일릉(연정공) ===================================== ■ [이팝나무] 연정을 조성한 분의 실기나 문집 (2012-08-19 12:28) 저는 향토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몇 일 전 성역화사업이 끝난 임고서원을 찾았다가 고경면 선원리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잘 정비된 연정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했습니다. 그런데 문화재(중요민속문화재 제107호) 안내판에도 그랫지만 연정을 조성한 분이 현 거주자 정용준의 8대조라고 표기했을뿐 그 분의 이름이 무엇인지? 또한 벼슬은 무엇을 했는지 혹 남긴 시문은 없는지? 등 제반사항에 대해 궁금합니다. 그분의 행장이나 문집, 실기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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