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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정씨 족보 발 (양계선생문집 발췌)
작성자정의록(jeongeuiroks@yahoo.co.kr)작성일2014-12-19조회수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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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정씨 족보 발 (烏川鄭氏 族譜跋) 우리 오천정씨(烏川鄭氏)는 해동(海東)의 명망있는 씨족이 된지 오래이다. 만력(萬曆) 을해년(乙亥年)에 절도사(節度使)인 세필(世弼)이 족보(族譜)를 간행했는데 임진병란(壬辰兵亂)에 산실되어 거의 없어지고 겨우 한 두집에서 보장(保藏)하고 있었으나 세월이 오래되고 세대가 점차 멀어져 후에 난 사람이 때로는 파계(派系)를 알지 못하여 백세(百世)토록 일가인 친함은 길가는 사람과 같이 취급하였으니 장차 더 오래되면 될수록 지금보다도 더 못하게 될까 걱정이다. 불초(不肖)한 내가 외람되히 나라의 은혜를 입어 진양(晉陽=진주)에 부임하게 되어 대사성공(大司成公) 유성(維城)에게 나아가 하직하니 족보할 일을 부탁하는데 그 뜻이 간절하여 나는 절하고 응낙했다. 마침 병상공(兵相公) 익(익)이 남도해진(南道海鎭)을 맡아 봄에 의논하니 또 의견이 일치하여 서로 녹봉을 내어 상재(上梓)하였는데 구본(舊本)에 세계(世系)의 의심나는 것은 그 잘못을 고구하여 수정하였다. 또 형양(滎陽) 문충(文忠) 두 선생(先生)의 행록(行錄)의 대략을 펀차(編次)하여 수권(首卷)에 기록해서 후손들이 족보를 펼치면 모두가 선조(先祖)의 문장(文章).덕업(德業).절의(節義)가 성대함을 일목요연(一目요然)하게 알아보고 느끼는 바가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후에 이 족보의 규모와 조목이 찬연하게 갖추어졌으니 이것은 모두가 문중(門中)의 존장자(尊長者)인 왕자(王子)의 스승 극후(克後)가 검정하였다. 또 사인(士人)인 자(자)와 경(儆)을 불러와 교정을 맡기니 한 달이 못되어 일이 끝났다. 오호(嗚呼)라 우리 선조(先祖)께서 착한 일을 많이 하여 그 응보로 경사가 후세에 미쳐 자손들이 번성하였다. 분파(分派)에 비록 원근(遠近)과 친소(親疏)의 차이는 있으나 그 처음은 한사람뿐이다. 이 족보를 보는 사람이 누가 저절로 효도하고 우애있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더욱 돈독하고 화목한 의리를 힘써 우리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기를 일가의 모든 군자(君子)들에게 간절히 바라노라. 己丑年 (一六四九) 二月 下旬(그뭄) 十八世孫 진주목사(晋州牧使) 호인(好仁)이 삼가지음(謹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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