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약원의 태동(胎動)

    가. 영일정씨종친회 창립

 

1956년 8월경 완영(玩永)종친이 우영(佑永)종친댁을 방문하고 “서울에도 우리 영일정씨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으나 상호 연락처가 없어 모임이 없으니 어떠한 모임을 만들어 보자” 는 제의에 고명(高名)하시고 학식이 풍부한 원화(元和)종친을 방문하여 의견을 개진(開陳)하고 원화(元和)종친의 고견(高見)을 들어 시내 유지 종친댁을 일일히 방문하고 발기(發起)에 대한 찬성을 얻은 후 발기인회를 통고하여 1957년 4월 10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서울특별시 공보과장실(과장 鄭鳳和:별좌공파)에서 발기인 원화(元和), 해영(海永, 洛永 代理), 대화(大和), 주화(周和) 우영(佑永), 봉화(鳳和), 만교(萬敎), 태교(台敎), 완영(玩永) 종친 등 9명이 출석하여 재경영일정씨의 대동단합과 종친간의 친목돈독을 위해 재경종친회창립준비회를 개최하였다. 원화씨는 인사말에서 “우리 종중이 30년전까지는 서울에서 화수회(花樹會)가 있어 모임이 있었으나 그 후로는 30년간 모임이 없었다가 오랜만에 첨종제위(僉宗諸位)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되어 감개무량(感慨無量)하다” 라고 하였다.

 

1957년 4월 20일 제2차 발기인회에서는 재경종친회 명칭을 전국을 망라한 종친회를 조직하기 위하여 “迎日鄭氏宗親會” 로 개칭하고 회칙도 제정하였다. 또한 총회개최 통고를 신문에 공고토록 하고 대표로서 발기인총회 회장으로 원화(元和)씨를 추대하였다.

 

1957년 5월 11일 제3차 발기인회에서는 총회일시(1957.5.26 상오10시) 및 장소〔덕수궁 함녕전 앞(德壽宮 咸寧殿前)〕를 결정하였으며, 서울신문과 경향신문에 1회씩 공고하고 등록된 종친에게는 우편으로 통지키로 하였다.

 

1957년 5월 26일(일요일) 상오 10시 덕수궁 함녕전 앞에서 종인 60명이 출석하여 영일정씨종친회(迎日鄭氏宗親會) 제1차 총회를 개최하고 회칙을 일부 수정후 통과하였으며, 임원 및 종의원(宗議員)을 선출하여 영일정씨종친회가 창립하게 되었다. 임원 및 종의원은 아래와 같다.

 

   회   장 : 원화(元和),   부회장 : 봉화(鳳和:포천공파)  

   감   사 : 대화(大和), 봉화(鳳和:별좌공파)

   종의원 : 해영(海永), 완영(玩永), 만교(萬敎), 재효(在孝), 성한(星漢), 주화(周和), 원화(元和), 만교(晩敎),

                태교(台敎), 창규(昌奎), 주교(冑敎), 관모(觀模), 연극(然極), 재범(在範)

   고   문 : 상기(相基), 재용(在鎔), 해영(海永), 낙영(洛永), 길섭(吉燮)

   사무장 : 우영(佑永)    

   서   기 : 선화(宣和)

  

    나. 영일정씨문충공 포은선생파 종약원 설립발기

 

국치(國恥) 36년간의 악운(惡運)을 겪는동안 우리의 미풍양속이 모두 정폐(停廢)되었다가 전반(全般)이 광복신흥(光復新興)되는 이때 오종(吾宗)도 도의적공적(道義的功績)과 화랑적실천(花郞的實踐)으로 위대(偉大) 거룩하신 선조 포은선생(先祖圃隱先生)을 받든 대씨족(大氏族) 명문가(名文家)의 면목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영일정씨문충공(포은선생)파종약원을 두고 종재(宗財)의 관리발전을 도모(圖謀)하여 위선(爲先), 경종돈족(敬宗敦族)과 후진의 육영사업 등의 목표를 세워 점진영원(漸進永遠)의 장래를 기하는 상설기관을 구성코자 이에 발기하오니 종친들께서는 오는 음(陰)10월1일 영모재시사(永慕齋時祀)때「창립총회」에 소만참석(掃萬參席)하시어 훌륭한 발언 많으시기를 우리 종중의 천만년대계(千萬年大計)를 위하여 바라고 믿습니다.   

추신(追伸) :

하기(下記) 종친들께서는 본 발기취지(發起趣旨)를 귀지방(貴地方) 및 각지(各地)에 산재(散在)한 종친들께 서신(書信) 또는 구두(口頭)로 상호전달(相互傳達)하시어 빠짐없이 입회토록 촉진(促進)하시고 본원(本院)에 住所 및 名單을 報告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檀紀4290年(1957) 丁酉8月15日

      

 서울: 원화(元和), 봉화(鳳和), 길섭(吉燮), 재범(在範), 해영(海永), 재효(在孝), 우영(佑永)

 능동(陵洞): 철용(喆鎔), 세영(世永), 연승(然陞), 덕화(德和), 연설(然卨)  

 대전(大田): 경화(景和), 두영(斗永).     광주(廣州): 은영(殷永)

 왕산(旺山): 인화(仁和), 연각(然珏).     초부(草芙): 지화(志和).    수원: 주교(冑敎)

 

※ 1957.8.15일 “영일정씨문충공 포은선생파 종약원 설립발기문”은 보존되어 있으나 이후 종약원에 보고된 명단이나 같은 해 영모재 시제때 창립총회를 개최한 기록은 없어 수록하지 못하였다.

 

   다. 영모재(永慕齋) 창립

 

영일정씨 문충공 포은선생(圃隱先生)의 도학충절(道學忠節)은 우리 문중은 물론 우리 민족의 기강(紀綱)을 이룩했고 주체의식(主體意識)과 우국사상(憂國思想)의 근본이념을 일깨워주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귀감(龜鑑)이 되었으나 국체(國體)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 先生이 가신지 500여년이 된 오늘 우리 민족의 자주역량과 국토통일을 이룩하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 후손들은 선조의 거룩한 뜻을 길이 빛내기 위하여 과거 조선조(朝鮮朝)에 유혈(流血)로서 얻어진 사패지지(賜牌之地) 임야와 소속위토(所屬位土)를 보존키 위하여 종중 또는 연명으로 등기되어 있으나 이는 비합법적인 조직체임과 연서등기(連署登記) 역시 개인에 불과하여 총유소유권등기(總有所有權登記)의 단점을 기화(奇貨)로 하여 재산을 침해당할 우려가 있어 이를 사전에 방지함이 시급한 일임을 통감하는 바이다.  이에 우리 정씨는 중시조(中始祖)인 포은선생 묘소와 유물의 보존은 물론 제전(祭奠=四節祀) 봉향(奉享)의 충실과 재산 영구보존의 목적을 두며 현 종약원 체제는 비합법 체제임으로 허위 종중으로 하여 재산의 침해성이 크므로 영모재를 두어 종재(宗財) 일체를 종중과 그 권리를 공유(共有)로 하여 관리와  운영에 만전을 기하고자 종친(宗人) 약80명이 모여 영모재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정관제정과 임원 선출을 하였다.

  

  창립일시: 1965년 음 10월1일 오전10시

  제안자  : 정덕화(鄭德和)

  회의록 서명날인: 정석영(鄭奭永), 정귀용(鄭貴鎔), 정덕화(鄭德和)

       

    라. 종무원(宗務院) 결성

 

1966년(丙午) 10월 1일(음력) 영일정씨 포은공파 총회시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봉화(鳳和)종친은 "고금(古今)을 통하여 희유(稀有)의 충절(忠節)을 가지신 포은공(圃隱公) 후손으로서 종중의 기구로 전에도 종무원(宗務院)이 있었으나 수년(數年)을 유명무실하게 지냈으니 이제 재편(再編)하여 중대한 종무(宗務)를 운영(運營)치 않으면 안되겠다" 며 충분한 토의를 할 것을 부탁하자 덕화(德和)종친은 정관채택에 있어 전 정관을 그대로 채택하고 미비점이 있으면 이사회에 일임할 것을 동의하자 전원 이의 없이 찬성 의결하였다. 이어 임원선출에 있어서는 5명의 전형위원을 선출하여 이사 21명을 선출하기로 하고, 아래와 같이 임원을 선출하였다.

 

이사장 원화(元和), 부이사장 봉화(鳳和),

이사 (서울) 길섭(吉燮), 계용(季鎔),    (진주) 민용(珉鎔), 직교(直敎)

       (용인) 창수(彰洙), 철용(喆鎔), 연승(然陞), 덕화(德和), 지화(志和), 세영(世永), 은영(殷永), 석영(奭永),

       (영천) 일화(一和),   (청도) 만교(萬敎)  (강릉) 주교(冑敎),  (부여) 용화(龍和), 순용(舜鎔),  (대전) 달화(達和)

간사 (용인) 철용(喆鎔), 연설(然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