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鄭氏)
득성(得姓)의 유래(由來)
신라
유리(儒理)왕〔3대 임금〕9년〔漢나라 연호로
건무(建武) 임진(壬辰)년(서기 32년)〕봄에
진한(辰韓)의 6부의 이름을 고쳐 그 부족장(部族長)에게
각각 李氏, 崔氏, 孫氏, 鄭氏, 裵氏, 薛氏라는
성씨를 하사(下賜)하였다.
진한의
제4 자산진지부(觜山珍支部)의 부족장은 지백호(智伯虎)라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에 화산(花山)이라는 고장에
내려와 자리 잡았으므로 여기가 진지부(珍支部)의
본 고장이 되었으며, 나중에 지백호에게 鄭氏의
성이 하사되었다.〔고려 태조때 6부를 개칭(改稱)하였는데
그 본명(本名)을 통선부(通仙部)라고 한 부촌(部村)은
지금의 부동(府東)에 있는 시파촌(柴巴村)
등이다.〕
대개
영남(嶺南)의 정씨가 그 성씨를 갖게된 처음의
사적(事蹟)이 이와 같다는 글이 동경지(東京誌)에
실려있고 경자보(庚子譜)에 보입(補入)하였다.
상고하여
보건대 진한시(辰韓時)에 하늘로부터 여섯
사람의 큰 인물이 내려와서 6부의 마을을 하나씩
맡아서 그 추장(酋長)이 되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알천(閼川) 양산부(楊山部)란 마을인데,
그 추장은 알평(謁平)이며, 처음에 표암봉(瓢岩峯)에
내려왔다.
그
두 번째는 돌산고허부(突山高墟部)란 마을인데
그 추장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이며, 처음에
형산(兄山)에 내려왔다.
그
세 번째는 무산(茂山) 대수부(大樹部)란 마을인데
그 추장은 구례마(具禮馬)이며, 처음에 니산(尼山)에
내려왔다.
그
네 번째는 자산진지부(觜山珍支部)란 마을인데
그 추장은 지백호(智伯虎)이며, 처음에 화산(花山)에
내려왔다.
그
다섯 번째는 금산가리부(金山加利部)란 마을인데
그 추장은 지타(祗沱)이며, 처음에 명활산(明活山)에
내려왔다.
그
여섯 번째 명활산고야부(明活山高耶部)란 마을인데
그 추장은 호진(虎珍)이며, 처음에 금강산(金剛山)에
내려왔다.
한(漢)나라
선제(宣帝) 임금때 연호(年號)로 오봉(五鳳)
원년(元年) 갑자(甲子) 진지부장(珍支部長)
지백호(智伯虎)를 비롯하여 양산고허(楊山高墟)부장(部長)
등 5부장(部長)이 함께 신라시조 박혁거세를
옹립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므로 6부장은
모두 개국공신(開國功臣)이 되었으며, 유리왕(儒理王)
9년(壬辰年) 그 부촌(部村)의 명칭을 바꾸어
각각 성씨를 하사(下賜)하였는데 그 본래는
진지부(珍支部)의 족장(族長)이었던 지백호(智伯虎)에게도
정씨성(鄭氏姓)을 하사(下賜)하였으며, 낙랑후(樂浪候)라는
벼슬에 봉하였다.〔동사(東史)에서 빼왔으며
신증(新增)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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