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선생 묘소의 역사적 유래

포은 정몽주선생의 묘역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옛이름 쇄포촌(曬布村),일명 능골〕산 3번지에 있다. 고려 공양왕 4년(1392년) 음 4월4일 황해도 개성 선죽교에서 순절(殉節)하신 후 처음 안장(安葬)하신 곳은 개성부근의 해풍군〔海豊郡=풍덕(豊德)〕이다. 같은 해 음 12월 부인 경순택주(敬順宅主) 경주이씨가 졸(卒)하여 해풍군에 모셔졌다. 순절하신지 14년이 되는 1406년  3월 이곳(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천묘 합장(遷墓合葬)하였다. 가문(家門)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본래 포은선생의 고향인 경상도 땅으로 천묘지(遷墓地)를 정하고 면례행렬(緬禮行列)이 용인시 경계에 이르러 잠시 멈추어 쉬고 있을 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 명정(銘旌)이 하늘 높이 날아가 이곳(현재 묘지)에 떨어지자 모든 사람이 이곳이 명당(明堂)자리라며 포은선생의 유택(幽宅)을 이곳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면례행렬이 멈추었던 곳의 풍덕래(豊德來)란 지명은 포은선생의 면례행렬이 개성 풍덕으로부터 왔다하여 풍덕래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1600년(선조 33년)에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가 승하(昇遐)하심에 여러 지술관(地術官)을 각처에 보내어 능소(陵所)자리를 구하게 함에 이곳 포은선생의 묘소자리가 적합처로 정하게 되었다. 선조대왕은 포은선생의 묘소임을 알고 충현(忠賢)의 후골(朽骨)을 어찌 200년후에 발굴(發掘)할 수 있겠는가 하시고 다른 곳에 구하도록 하명하였다. 지금의 능골은 그 당시 능소(陵所)의 적합지로 정해졌다는 연유에서 능골로 부르게 된 것이다.

포은선생 묘소와 묘비 경기도 지방문화재(기념물 제1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