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선죽교

선죽교(善竹橋)는 개성시 선죽동 자남산 동쪽 기슭의 노계천에 있는 고려시대의 돌다리다.

선죽교는 1392년(태조 1년) 정몽주선생(鄭夢周先生)께서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만고(萬古)의 충신(忠臣)이 피살(被殺)된 장소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에는 석란간(石欄干)이 없었는데 1780년(정조 4년) 정몽주선생의 후손들이 석란간(石欄干)을 설치하였다.

원래 이름은 선지교(選地橋)였는데 포은선생께서 순절(殉節)하신 후 선지교(選地橋) 돌 틈에서 대나무가 솟았다 하여 선죽교(善竹橋)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포은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산3번지에 있다.

당시 이성계의 자택은 좌견교(坐犬橋) 건너에 있는 목청전(穆淸殿) 이었다. 해주(海州)에서 사냥중에 낙마(落馬)하여 목청전(穆淸殿)에서 요양(療養) 중이었기 때문에 포은선생께서 병문안(病問安) 갔다 오는 길에 이방원(李芳遠)의 지시를 받은 심복(心腹)인 조영규(趙英珪)가 선지교에서 기다렸다가 철퇴(鐵槌)를 휘둘렀다. 그러나 조영규는 차마 포은선생을 치지 못하고 말머리를 쳐서 낙마하신 포은선생을 망나니 고여(高呂)가 살해(殺害)하였다.

옛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선죽교에서 매일 밤 울음소리가 들려 선죽교 옆에 ‘읍비(泣碑)’를 세웠는데, 그 뒤로는 그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읍비(泣碑)’ 주위에서 오죽(烏竹)이 자라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