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선생 묘소의 사패지(賜牌地)

 

이조 중종 12년(1517년)에 중종대왕이 특별히 명하여 포은선생의 묘소를 환봉(環封=사패지 경계)케 하시고 포은선생의 묘역을 중심으로 향수산(香水山)으로부터 무등치(無等峙) 너머 죽전(竹田) 등지(等地)까지 약 700여정보를 사패지(賜牌地=나라에서 공신에게 하사한 산판, 논밭등)로 정하여 경계를 표시하였으며, 산직(山直) 5인을 두어 수호(守護)케 하였다. 또 이 해에 중종대왕은 태학생(太學生) 권전(權磚) 등의 상소(上訴)로 말미암아 조정 신하들과 논의하고 명하여 포은선생을 문묘(文廟)에 배향(配享)하는 한편 예조(禮曹)에 명하여 포은선생의 묘소를 수리하고 초목(樵牧=나무하는 일과 짐승치는 일)을 금지하며 묘비(墓碑)를 세웠다.

 

사패지 완문(賜牌地 完文:조선때 관아에서 부동산등의 처분에 관하여 발급하던 증명서)

  가. 문충공산소 환봉수칙문안(文忠公山所 環封修飭文案)

     (1) 원문(原文)

 

(2) 번역문

 

이조 중종 12년(명나라 무종 12년, 서기 1517년)에 예관(禮官)을 보내어 포은산소 둘레에 나무하는 것과 짐승 먹이는 것을 금하는 경계구역을 정하여 표시하도록 함.

이조 숙종 30년(청나라 성조(聖祖) 43년, 서기 1704년) 호조(戶曹)에서 지도를 그려 내려 줌.

이조 영조 19년(청나라 고종 8년, 서기 1743년)에 죽오 민상공(竹梧 閔相公)이 수어사(守禦使)가 되었을 때 산소(山所) 구역에 장승으로 표목(標木)을 세우고 화전경작(火田耕作)을 엄금하라는 공문을 용인현(龍仁縣)에 보냄.

종손 원교(元敎)가 감영(監營)에 글을 올려 향수산(香秀山) 아래 한 지역은 우리 선조 문충공(文忠公)의 묘소이라 조정에 대대로 은전(恩典)을 베풀었다는 것과 정암 조광조(靜菴 趙光祖)의 주청(奏請)한 일과 월사 이상공(月沙 李相公)이 주청하여 옥당관(玉堂官)을 보내어 묘소에 제사 올린 일과 산소 둘레에 단속을 엄히 할 것을 아룀.

 

※ 이상은 중종 12년 이후 산소를 보호하기 위하여 조정에서 관청으로, 관청과 관청끼리 주고 받은 문안(文案)이고,

 

그곳에 사는 이원장(李元章), 양자유(楊子由), 이 우(李偊), 이 경(李儆) 등이 무덤 둘레의 나무를 함부로 베어 판자를 만들고 화전을 일구어 산판(山坂)을 해친 죄를 엄히 다스려 형초(刑招)하여 가두고 귀양보낸 데 대한 관청의 지시. 관청끼리 오고간 수없이 많은 공문을 문안으로 보존하고

범법(犯法)한 무리들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을 서약하는 문서를 받아 보존하였음.(直敎종친 번역)

 

나. 완문(完文)2

     (1) 원문(原文)

 

   (2) 번역문

 

이 문서는 완문을 작성하여 주기 위한 것임. 용인 모현촌 능동은 곧 문충공 정포은선생의 의리(衣履)를 수장(收藏)한 곳이며 제사지내는 곳으로 10리에 걸쳐 봉산(封山)한 곳으로 일동(一洞)이 서원의 하루 수군(守軍) 50명 및 묘역의 산직과 모입군(募入軍) 30명이 역(役)을 면제받는데 이는 특별히 열성조(列聖朝)의 수교(受敎)로 인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또한 복호(復戶) 9결을 특급받은 것이다. 지금 조정(朝廷)의 명령 아래 식(式)과 같이 첨정(簽丁)이 섞여 있으니 열성조의 현인(賢人)을 숭상하고 사도(斯道)를 중히 여기는 성의(盛意)에 어긋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성교(聖敎)의 침책(侵責)하지 말라는 뜻으로 완문을 발급하거니와 나아가 동역(洞役)으로 말하자면 왕림(旺林)·동산(東山)·우동(牛洞)은 모두 정몽주 선생의 묘역과 서원은 한 동네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선묘조(宣廟朝)에 묘역을 왕성하게 하라는 선칙(先勅)을 묘역과 서원의 수군(守軍)을 엄히 지키는 先勅邱隴之標 申嚴墓院守軍者良以此也 것이 좋다는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세 동네에 사는 민(民)은 한결같은 법식에 의하여 첨정(簽丁)은 이름만 있고 실제는 없으므로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성교(聖敎)의 도리를 받듦으로써 이같이 침책(侵責)하지 말라는 뜻으로 완문을 발급하고, 이에 이러한 뜻으로 관문을 전달하여 형정(刑正)을 거행하고 즉시 보고할 것.

甲子11월 일

겸사(兼使) 〔 押〕

다. 완문(完文)3

 

     (1) 원문(原文)

   (2) 번역문

이 문서는 완문을 작성하여 주기 위한 것임.

포은선생의 산소를 환봉(環封)한 곳에 금송령(禁松令)을 어긴 양반 정돈용(鄭惇容)을 형배(刑配)로써 엄징(嚴懲)하려고 하였으나 스스로 범한바가 엄한 벌을 면하기 어려움을 알고서 다시는 작목(斫木)하고 기간(起墾)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다짐을 받았으므로 특별히 임시로 방송(放送)하여 너그럽게 용서한다. 이에 완문을 작성하여 줌으로써 후일에 고찰할 수 있는 근거로 삼도록 함이 의당함.

계사년(1893) 8월 일

겸도사(兼道使) (押)

순사(巡使) 이경직(李耕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