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명학회의 창립과 활동

 

1995년 3월 김충렬(金忠烈:고려대), 유명종(劉明鍾:동아대) 교수 등을 비롯하여 국내 동양철학자 10여명이 중심이 되어 한국양명학회가 창립되었으며 초대 회장에 송하경(宋河璟:성균관대)교수를 선출하였다.

이후로 양명학 전공 교수 10여명, 박사 20여명, 그 외에 다수의 석사와 학인들이 회원에 가입하여 학회발표 등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김길낙(金吉洛:충남대), 정인재(鄭仁在:서강대)교수가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학회는 더욱 활성화 되었다. 우리 영일정씨 포은공파 종약원도 본 회에 가입하여 한국양명학회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2004년부터는 "강화학파" 의 연고가 되는 강화군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한국양명학회는 활동무대를 국제화하였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에 걸쳐 열린 국제학술대회는 아래와 같다.

 

  제1회 국제학술대회:

2004년 10월 15, 16일 이틀에 걸쳐「강화 양명학파의 위상과 현대적 의미」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이 학술대회에는 중국의 오진(吳震:복단대), 대만의 황준걸(黃俊傑:대만대), 양조한(楊祖漢:대만중앙대) 그리고 일본의 중순부(中純夫:경도부립대), 난파정남(難破征男:복강여학원대) 등의 대가들과 국내 유수의 학자들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연구성과는 대만대학에서 중국어로 출판되었다.  한국사상에 대한 연구가 외국에서 국제적인 언어로 출판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서 우리 국학의 국제화에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셈이다.

 

  제2회 국제학술대회:

2005년 10월 28, 29일 이틀에 걸쳐「하곡과 강화양명학파」라는 주제로 강화에서 개최되었다. 이 학술대회에는 대륙에서 3인, 대만에서 2인, 일본에서 1인 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들과 국내에서 20여명의 학자들이 참가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제 하곡 정제두 선생의 양명학은 현대에 방황하는 인류가 바른 길을 찾는데 하나의 등대가 될 것이다. 오늘에 와서 주자학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양명학 분야에서도 우리가 일본,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래의 대안 철학의 형성에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은 하곡선생이 뿌려놓은 씨앗에 말미암는 바가 큰 것이다.  

정제두(鄭齊斗) 선생은 호(號)가 하곡(霞谷)이고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포은선생의 11세손이다. 1690년 41세 되던 해에 관직을 사임하고 안산에 이거(移居)하여  60세까지 20년동안 양명학에 몰두하였으며 61세 이후에는 강화군 하곡에 이주하여 둔세(遁世) 하였다.

 

  제3회 국제학술대회

2006년 11월 3, 4일 양일에 걸쳐「 하곡과 한국양명학의 전개」라는 주제로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에서 개최되었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노영찬 교수의 "양명학과 현대 종교학" 이란 제목으로 기조연설이 있었고 정화열 교수의 특별강연이 있었으며 미국, 중국, 일본 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 6명과 국내에서 26명의 학자들이 참가하여 열띤 토론을 벌렸으며, 러시아의 저명한 학자도 본 학술대회의 참관을 위하여 참석하였었다.


[강화도 정제두 묘소]


[강화도 정제두 묘소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