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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사업(爲先事業)] 위선사업(爲先事業)
작성자관리자(poeun@poeun.com)작성일2022-09-23조회수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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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사업(爲先事業)

 

 1. 포은선생 유허비각(遺墟碑閣) 중건(重建)

 

1986년 봄에 경북 포항시 오천면(烏川面) 구정리 124-2에 있는 포은선생유허비각(圃隱先生遺墟碑閣)을 중건(重建)하였다.

 

 2. 종가신축(宗家新築)

 


종가와 사당(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71번지 소재)

종가는 1990. 6. 5일 건축허가를 얻어 7. 27일 공사입찰을 실시한 결과 1억2천6백만원에 정연서(鄭然瑞)씨로 낙찰되어 같은 해 8.9일 계약하였다. 8.12일 기공하여 10. 24일 상량식을 거행하였으며, 같은 해 12.8일 완공하였고 1991년 2.13일 모현면의 준공검사를 받아 같은 해 3.21일 등기 완료하였다. 건축규모는 지하 4.57평, 안채 38.15평, 사랑채 19.68평 연건평 62.4평이다.

외형은 전통적인 한국 양반가의 품위와 정취를 살리고 내부는 현대식으로 고전과 현대를 조화시킴으로써 종가로서 손색없는 건물이다. 이 종가의 대지는 종손(宗孫)명의로 되어있고, 건물은 종약원명의로 되어있다.

  위  치 :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71-1번지

  설계자 : 청덕실업 소장 정덕용(鄭德鎔) 종친

  공사 주관부서 : 묘역정화담당자 정연관, 정연설, 정래정, 정대화,

                         정준기

  공사지도책임자(감리겸) 청덕실업(주) 소장 정덕용

 

 3. 영당(影堂) 신축 및 종가 옹벽구축공사

 

가. 1991. 5. 2일 모현면의 건축허가를 얻어 같은 해 4.17일 업자 정연서씨와 7천9백만원에 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하여 1991. 9. 7일 준공하였다.

현판(懸板) "圃隱影堂" 은 尤庵 宋時烈(우암 송시열) 親筆이다.

포은 영당은 가운데에 영당(影堂:이름난이의 화상을 모셔둔 곳)이 있고, 좌측과 우측에는 각각 감실(龕室:사당안에 신주를 모셔두는 장)이 있다.

나. 1992. 5. 5일 포은선생 신주(神主)를 신축한 사당으로 봉환(奉還)하였으며 정희영  정연설, 정연관 등이 참석하였다.

 

 4. 계현재(啓賢齋) 보수 및 포사(庖舍) 개축

 

계현재 보수 및 포사 개축공사는 수년간 계획한바 있었으나 실기하여 추진치 못하였다가 포은선생 600주기에 때맞추어 1992. 8. 8일 업자 서울시 중곡동 윤석동과 3천15만8천3백50원으로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착공하여 1992.9. 20일 준공하였다.  본 사업 추진에는 종약원 이사 덕화(德和)종친, 재장(齋長) 안용(安鎔)종친이 수차 서울을 내왕(來往)하면서 전력을 다하였다. 본 공사의 공사금은 종약원에서 부담하였고 계현재 재장 안용(安鎔)종친과 유사(有司) 규화(圭和)종친이 감독 겸 감리하(監理下)에 공사를 완공하였으나 현재까지 미등기 상태로 있다. 배수로 및 계현재 토방과 포사의 싱크대 설치 등으로 1백80만원이 추가되었다.

                 

 5. 임고서원(臨皐書院) 성역화사업(聖域化事業)


임고서원

 

1992.4.4일 포은선생 600주기에 즈음하여 영천(永川)시 임고면 양항리에 소재한 임고서원(臨皐書院)이 소장한 포은 영정이 국보 제 1109호로 지정되고, 서원과 영천지역 유림이 일체가 되어 추진중인 임고서원 성역화사업이 국고 22억여원으로 제1,2차 사업인 사당과 대강당 건축이 준공단계에 이르렀고, 본원이 착공한 계현재 보수 및 고사 신축공사가 준공단계이므로 600주기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참배단(17명)을 구성하여 임고서원과 계현재를 참배하고 임고서원 성역화 추진위원 등을 격려하고 사의를 표하였다.

 

 

6. 임고서원(臨皐書院) 추배(追配:황보인,장현광) 반대운동 전개  

 

1998년도 장현광 후손이 추가 배향운동을 전개할 당시 영일정씨포은공파 종약원에서는 정연택 이사장 명의로 '임고서원 유림제위께' 임고서원 추가배향 반대 서한을 발송하였고, 1998.8.5일 이사장단회의에서는 '임고서원에 포은선생 독향(獨享)이 계속 유지되어야 할 역사적 배경' 을 작성하여 널리 알렸으며, 임고서원의 포은선생 독향 정통성을 홍보하기 위하여「임고서원 병배록 번역문」300부 제작을 위한 예산을 편성(100만원)하였다. 또한 종약원 영남지역 후손들과 영일정씨 2파(派) 후손들 및 박씨〔(朴氏:오졸자(吾卒子)〕후손들이 합동(合同)으로 상의회(尙義會)를 조직하고 임고서원(臨皐書院) 전(前) 원장(院長)이었던 박태수(朴泰洙)씨를 회장으로 추대하였으며, 박태수 회장은 임고서원 원회에 참석하여 임고서원에 포은선생 외에 장현광(張顯光)의 추가배향(追加配享)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반대운동을 전개한 바 임고서원 유림(儒林) 중 장현광 추배(追配)운동에 참여했던 일부 유림들과 장현광 후손측은 추배를 포기하게 되었다.

※ 그 후 2001년도 사림(士林)의 공의(公議)로 지봉 황보 인(芝峰 黃甫 仁)선생을 다시 제배(躋配)하여 2005년 현재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선생, 지봉 황보 인(芝峰 皇甫 仁)선생 두 분을 배향(配享)하고 있다.

 

 7. 임고서원 준공 행사비 지원 및 시상

 

가. 임고서원(臨皐書院)에서는 1999.9.18일 성역화사업 준공식을 거행하게 될 때 준공기념 행사비 협조요청이 있어 종약원에서는 임고서원은 타 서원과는 격이 다르고 막대한 국고로 성역화사업을 완성했으며, 장현광, 황보 인 추배운동을 저지하고 포은 선생 한분만을 모시도록 재 결의되었으니, 종약원의 체면과 지역정서를 감안해서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 등 시설비 보조금으로 1천만원과 준공식 행사비 2천만원, 합계 3천만원을 지원하고 준공식에 종약원 이사장 및 종인 다수 참석하였다.                                      

나. 정연택 이사장은 숭모사상이 투철하여 후진들에게 귀감이 된 경북 청도군 거주 종약원 대의원 정지영(鄭池永)종친과 임고서원 성역화 사업을 위하여 공이 많은 임고서원 도유사 서장덕씨 외 4명(재무담당 전영기, 정대업, 사적비문 작성자 이진기, 상량문 작성자 김상규씨)에게 각각 감사패와 부상으로 3돈 상당의 금지환(金指環)을 수여하였다.  또한 경산종친회 정선경 회장을 비롯하여 후손 120명이 4천5백90만원을 임고서원에 헌성(獻誠)하였다.

 

  8. 삼은각(三隱閣) 보수공사비 지원

 

사단법인 숙모회(肅慕會) 이사장으로부터 삼은각(계룡산 동학사 경내) 보수공사비 지원 요청이 있어 1999년도에 일금 500만원을 지원하였다.

 

 9. 종가 보수공사

 

구      분

계 상 금 액

비       고

     방 수 공 사

16,000,000원

  주택지반 보강공사
  (멀크그라우딩-차수벽 설치)

     지하실 메우기

 2,000,000원

 

     보일러실 옥외설치

 2,000,000원

 

20,000,000원

 

 

10. 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 묘역정비사업

 

  가. 묘소 개축 사초(改築 莎草)


일성부원군 묘소와 묘비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서원골 소재)

일성부원군 선조 묘소 개축수묘사업(改築修墓事業)은 수십년동안 전 자손의 숙원사업이었으나 시공비 예산이 없어 도저히 타개방법(打開方法)이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하던 차에 1961년에 부원군 후예(後裔)인 서울 길섭, 봉화 종친, 대전 경화 종친, 울진 연국 종친 등 4인이 포은선생문집 한글해석판을 양장으로 간행하여 각파 자손들에게 봉독(奉讀)케 하고 그 대금 이윤(利潤)으로 일성부원군 묘소를 연3일에 걸쳐 연인원 60여명이 시공비 14,328원(新貨)을 들여 개축사초(改築莎草)하였으며, 차일(遮日) 1구를 새로 만들고 제석(祭席=돗자리) 한닢을 구입하였다.  

  

  나. 묘소 석물(石物) 시설

1990.9.23일부터 24일까지 일성부원군 묘소에 상석(床石), 등석(燈石), 장대석(長臺石) 산신석(山神石) 및 부속 석물 등을 종약원에서 2백71만원을 부담하여 개체(改替) 또는 새로 설치하였다. 시공자는 영천석물공장이었고 당시 덕화(德和), 연설(然卨) 덕화(悳和), 규화(圭和) 종친 등이 감독하였다.

 

  다. 일성부원군 묘소 진입로 개설 및 포장공사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산31-1 소재 일성부원군 묘역 정비사업을 추진 하면서 석물(石物) 및 토양(土壤)을 운반할 수 없어 영천시가 시설한 농로로부터 종답 722번지를 경유하여 묘역까지 426m의 진입로를 개설하였다. 공사 내역은 156m는 잡석으로 포장하고, 270m는 시멘트로 포장하였으며, 로폭(路幅)은 3m, 두께는 0.2m로 총공사비 4천8백만원이 소요되었다. 진입로 개설로 묘역 50여미터 전방까지 승용차와 제물(祭物)차량까지도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참배객의 편의를 도모하게 되었다.

 

11. 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 위토(位土) 관리 및 향사봉향(享祀奉享) 종약원 이관

 

1998.4.24일 현재 경북영천의 일성부원군 위토 관리 및 향사(享祀)를 그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종인들이 행사해 왔을 때 계현재(啓賢齋) 재장(齋長) 정기화 종친의 건의를 받아들여 종약원에서는 1998.4.24일과 동년 11.18일 대의원정기총회에서 일성부원군 묘소와 관계된 토지 및 계현재 관리에 대하여 심의하고「재산 관리는 종약원에서 직접 일괄 관리하고 일성부원군의 향사비용도 종약원에서 부담하여 향사를 봉향(奉享)키로 한다.」는 결의를 하였다. 이에 의거 영천시 임고면 매호동 288-2번지 외 7필지 위토 208,405평에 대하여 종약원에서 모두 직접 관리하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의 일성부원군향사 제수비용으로 매(每) 60만원씩 부담키로 하였으며, 1999년 8월 중정일에 60만원을 부담하여 향사를 봉향하였다.

경북 영천시에 위치한 일성부원군 위토 현황은 다음과 같다.

 

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 위토 현황

소재지

지 번

지목

지   적

등기일자

원 인

등기명의자

추진사항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

288-2

   1,028

311

 97.1.14

상  속

정래정,김순옥

하증덕,정래희

농지이기 때문에 종약원이 취득할 수 없어 종손 명의로 등기되어 있다.

328-5

   1,663

494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669

   1,068

324

 2001.

   2.21

소유권

보  존

정래정,김순옥

하증덕,정래희

722

   1,478

448

영천시

고경면

차당리

1-1

     832

252

 81.8.31

소유권

이  전

계현재종중

2005년 현재 종약원 명의로 등기 추진 중에 있음

영천시

고경면

전사리

137

   1,624

491

 86.6.27

소유권

이  전

연일정씨 일성부원군파

2005년 현재 종약원 명의로 등기 추진 중에 있음

영천시

도림동

산1

임야

  46,611

14,100

71.12.20

소유권

보  존

영일정씨포은공파종약원

영천이씨부장공파종중

2005년 현재 공유지분 분할등기 추진중에 있음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산31-1

임야 

634,661

191,985

71.12.20

소유권

보  존

7필지

688,935

208,405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507

   1,273

385

03. 1.29

매 매

영일정씨포은공파종약원

계현재 신축부지(增)

 

12. 계현재(啓賢齋)의 유래(由來)와 신축(新築)

    

   가. 유 래(由 來)


계현재(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소재)

계현재는 국학(國學) 계성사(啓聖祠)에서 유래한 말이며, 인재를 성현(聖賢)으로 계도하였다는 뜻을 가진 중국 고사(故事)의 예(禮)에 따라 포은선생께서는 1337년 부(父) 운관(云瓘)과 모 영천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훗날 대현(大賢)으로 유생(儒生)과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게 된 것은 훌륭하신 부모의 계도가 있었기에 훗날 계현재(啓賢齋)라 하였다.

돌이켜 보면 포은선생은 1517년(중종12년) 문묘에 배향됨과 더불어 전국 25개 서원에 봉안되셨고 임고서원 원지(院誌)에는 서원은 당초 부래산(浮來山)에 세워졌으나 소실되었고 1553년∼1555년에 道一洞(현위치)으로 옮겨(進士 노수, 生員 김응생, 향노 정윤양, 生員 정거 발의) 포은선생 위패를 봉안하고 일성부원군 향사는 임고서원 제례후에 후손에 의해서 묘제로 봉행되어 왔다.

1754년(甲戌) 통상(統相) 정찬술(鄭纘述)(숭록대부 지중추부사 어영대장)의 발의와 지원으로 일성부원군 묘사(墓祀)에 처음으로 사림이 중심이 되어 제물을 준비하고 참여했으며 재사(齋舍)를 짓도록 하고 춘추로 묘사를 모시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예향(禮享)은 춘추 묘제로 봉사(奉祀)하여 왔다.

1912년 현 재사 건축과 더불어 후손에 의해 임야 206,084평, 위토 2,318평으로 묘사를 이어 왔으며 재사는 본채 11평과 관리사를 중수(重修) 중건(重建)을 거듭하면서 재장(齋長)을 중심으로 계승 관리되어 왔다.

1960년(庚子) 3월에 계현재 중건은 문충공 파보간행을 기회로 각 문중의 성금으로 구 재사를 훼철하고 당시 총공사비 120만환을 들여 다시 건축, 같은 해 8월에 완공하였으며, 이 때 공사 감독은 두영씨와 일화씨가 수고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나. 신축경위(新築經緯)


계현재 현판 제막식

계현재는 임고서원에  배향된 포은 정몽주 선생의 선고(先考) 일성부원군 재실로써 공자(孔子)의 계성사(啓聖祠)의 옛이름을 본받아 포은선생의 선고 운관(云瓘) 재실을 계현재라 칭하여 왔는데 36㎡건물이 노후되고 지붕이 누수되며, 마루와 담장이 무너져 출입조차 곤란한 형편으로 자손된 도리를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1998년에 영천 종인들이 보수요청과 관리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종약원이 맡아 줄 것을 요청해 옴에 따라 종약원에서는 2000. 11. 28일 대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신축을 추진키로 결의하였다.

또한 일성부원군 재사(齋舍) 신축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시행을 관리하며, 설계시방 및 규격에 맞는 공사가 되도록 당면한 사항을 심의함을 목적으로 하는 "일성부원군 재사 신축추진위원회" 를 구성하였다. 위원수는 8인 이내로 구성하고 위원회 기능은 규정으로 제정된 사항을 시행하고 이사장의 자문에 응하기로 하였고 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하였으며 그 후 위원회의 명칭은 "포은공묘역정비사업추진위원회" 로 변경되어 활동했다.

 

   (1) 포은공묘역정비사업추진위원회의 일성부원군 재사 및 묘정비공사 추진내용

     (가) 2002.10.16일 계현재 신축사업으로 대지매입(385평), 재사신축(17.64평), 삼문(4.54평), 세면장 및 화장실(6.3평), 담장(79m×1.7m×40/60) 등의 규모와 사업비(2억8천4백25만원) 검토, 일성부원군 묘정비(부토 및 잔디교체), 진입로 포장(280m×3m)과 사업비(3천만원) 등 2003년도 사업계획 수립.

     (나) 2002.11.27일 부지매입(2003.1월 중순), 건축설계(발주후 1개월),  착공일(2003.3월), 시공기간(착공후 6개월) 등 계획수립.

     (다) 2003.8.21일 공사금액(2억6천3백만원) 공사기간(03.6.6∼04.4.30)  도급자 최현복으로 결정하고 삼문(2.04평), 화장실(4.56평) 등의 일부 시설규모 축소 변경, 계현재 방향을 현재보다 54° 동향으로 안배하고, 전통 한식공법으로 후한 목재를 사용, 장차 문화재 지정에 대비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하였다.

   (2) 대지 매입

        2003.1.20일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507번지 임고서원 소유인 대지 1,273㎡(385평)을 금5천3백만원에 매입하였다.

   (3) 설계확정(2003)

        설계자 : 세안건축사무소 조성호

        재사(齋舍) 17.64평,  삼문(三門) 2.04평,  세면장(洗面場) 4.56평,

        담장  57.4m

   (4) 입찰 및 시담(示談)

        2003.4.28일 6개사가 입찰에 참가하였으나 예정가와 많은 차이가 있어 유찰되고 4개사와 시담결과 최현복씨와 2억6천3백만원에 최종 시담함.

   (5) 도급계약체결(2003.6.6)

       공사내역 : 계현재 17.64평, 삼문 2.04평, 화장실 4.56평(공사중 4평으로 축소공사함 : 좌변기2,소변기2,세면대2), 담장, 석축, 측구, 계단

       도급금액 : 2억6천3백만원(VAT없음)

       공사기간 : 2003.6.6∼2004.4.30

       도급계약자 : 경북포항시 북구 기계면 현내리 35-12 최현복

   (6) 고유제(告由祭)

        2003.7.3일 고유제 후 재사 11평을 철거함.   

   (7) 신축현장감독 위촉

      2003.9.1일 종약원에서는 아래 사항을 감독케 하기 위하여 이사 정용수, 정기화, 대의원 정태준을 계현재 신축공사 현장감독으로 위촉하였음.

     (가) 설계도서 및 내역과 현품의 규격, 수량, 재질 확인

     (나) 설계규격에 의한 시공 및 절차에 따랐는지, 이상이 있을 때 종약원에 연락, 설계감리의 지시를 받아 시공토록 하였다.

     (다) 설계변동요인이 있을 때에는 도급자, 종약원, 설계자와 합의 후 시공하였다.

   (8) 상량식(上樑式)

        2003.12.11일 낮12시 이사장 의철, 부이사장 재교, 춘영, 석화, 상임 이사 태용, 종무이사 연석, 용수, 태준, 기화, 진영, 무화, 영천시 동재, 설계사 조성호 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사(告祀) 후 12시30분에 종료하였으며 상량보문(上樑椺文)은 태용 상임이사가 썼다.

   (9) 재사좌향(齋舍坐向) : 술좌(戌坐) 진향(辰向)=건물뒷면(坐)은 서쪽에 가까운 북서쪽, 건물앞면은 동쪽에 가까운 동남향임.

   (10) 공기지연(工期遲延) 및 공사비 추가소요

        계현재 신축공사는 공사기간 동안 우기(雨期) 등 기상조건 악화 및 공사 도급자의 공사 지체 등으로 2005. 6현재까지 총 공정(工程)의 80%가 진척되었고 또한 동년 7.15일 추가공사 부분이 발생되어 공사비가 1천7백40만원이 추가되었으며, 공기(工期)도 지연되어  총공사비 2억8천40만원으로 2005.10.25일 완공되었다.

 

 다. 주변옹벽공사

   (1) 공사장소 :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507번지

   (2) 공사기간 : 2004.4.30일∼2004.5.31일

   (3) 도급금액 : 4천만원

   (4) 도급인 : 영천시 완산동 928-18 주식회사 오봉건설 대표이사 정래현 (5) 주변옹벽공사에 있어서 당초 절토계획 1.5m를 4.5m 절토함으로써 높이 4m의 옹벽설치가 불가피하였고, 또한 옹벽의 날개 길이가 8m 연장됨으로써 추가비용 3백만원이 소요되어 총 공사비 4천3백만원으로 2004.5. 31일 완공되었다.

 

  라. 준 공

2005.10.25일 낮 12시 정의철 종약원 이사장을 비롯하여 정비사업추진위원회 정춘영 위원장, 정석화, 정태용, 정연석 위원들과 공사 현장감독 정용수, 정기화, 정태준 종친, 설계사, 시공 목수 외 영천 거주 다수 종친들이 참석한 가운데 계현재 현판 및 사적비 제막식이 있었으며, 일성부원군 묘역공사 준공사항도 점검하였다.

 

   계현재 사적비문(啓賢齋 事蹟碑文)

 


계현재 사적비

국학(國學) 계성사(啓聖祠)의 예(禮)를 본받아 임고서원(臨皐書院) 유림(儒林)과 후손들이 포은선조를 대현인(大賢人)으로 계숭(啓崇)하신 휘(諱) 운관공(云瓘公)의 재실을 계현재(啓賢齋)라 이름하고, 제례(祭禮)를 엄숙히 거행하여 왔다.

기록에 의하면 숙종조(肅宗朝)에 후손 익(榏)이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에 부임하였을 때 임고서원내 별고(別庫)를 두어 묘제향사(墓祭享祀)를 올리게 하고 1751년 영조 27년에 후손 찬술공(纘述公)이 어영대장총계사시(御營大將總戒使時) 쌀 40석을 출연, 이를 기금으로 위토를 마련하고 일성군(日城君) 재사(齋舍)를 별묘(別廟)=계현재)로 지어 임고서원 춘추향(春秋享)과 같이 매년 음 2월, 8월 중정일(中丁日)에 묘제(墓祭)로 봉향(奉享)하게 되었다.

계현재는 임진란, 1868년 고종 5년 서원 철폐령 등의 많은 수난을 받는 동안에도 포은선조께서 부모상을 맞아 6년간의 여묘(廬墓)살이를 한 효심이 서려 있는 묘역을 경향 각지에서 찾아오는 후손들의 정성과 성금으로 유지 보수되어 왔다. 1998.11.18일 종약원 대의원총회에서 일성부원군 묘소와 관련된 부동산 및 제사 일체를 종약원이 관리하기로 결의된 후 기존 재실이 퇴락(頹落), 재건축이 불가피하여 11평의 건물을 철거하고 대지 385평을 임오서원으로부터 매입, 정지(整地)한 후 전통한식 목조한옥 17.64평, 三門 2.04평, 화장실, 담장, 석축 등을 문화재전문위원의 자문을 받아 설계하고, 3회의 경쟁입찰이 유찰되어 2003.6.6 최현복과 본 건물 2억9천4백70만원, 옹벽공사 4천3백만원, 토지매입비 5천3백만원 도합 3억9천70만원의 자체자금으로 2005.10.25 준공하게 되었다.

공사기간에는 유난히도 긴 장마와 담장부지 다짐을 위해 공사기간이 연장되었고 목재는 모두 후하게 설계하고 곡담을 쌓아 미관을 조성, 임고서원과의 조화가 되도록 노력하면서 훗날 문화재로 지정되어 영구보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모로 정성을 다하였다.

이 공사에 참여하여 주신 설계사, 목수, 현장감독 그리고 정비사업추진위원 여러분의 노고에 치하를 드린다.

 

                               2005년 10월 25일

                           영일정씨 포은공파 종약원

                             이사장  정   의   철

 

13. 효자리(孝子里) 비각(碑閣) 보수(補修)

 

효자리 유허비(遺墟碑)는 경북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044-5번지(舊번지 703)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2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는 포은정몽주선생의 유허비로 1355년 부친의 상을 당하여 묘소에서 3년을 지내고 그 후 1365년 모친상을 당하여서도 묘소에서 3년을 지내어 그 지극한 효성이 조정에 보고되어 공양왕 원년 1389년 포은선생께서 자란곳인 우항리에 "孝子里"라 새긴 비가 영천군수 정유(鄭宥)에 의해 세워졌다.

1487년 경상감사 손순효(孫舜孝)의 현몽에 의하여 잃었던 비를 땅속에서 찾아내어 다시 세우고 비각을 함께 건립하였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비각이 많이 훼손(毁損)되어 비각 보수는 우리 종인들 모두의 염원이었던 차에 영천시에서 시비(市費)로 비각을 전면적으로 보수하였고,  효자리 비 인근의 농로도 포장하였다. 다만 영천시와 영천 종인들이 비 옆의 토지를 주차장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종약원에 매입요청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주차장을 설치하고자 하는 토지가 농지이기 때문에 종약원이  취득할 수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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